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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사·금융

약가 인하 시대, 제약사가 '혁신형 제약기업'에 사활 거는 이유

by 의박이 2026. 6. 25.

약가 인하 압박이 거세지는 지금, 제약사들이 너도나도 '혁신형 제약기업' 인증에 사활을 겁니다. 이 인증 하나가 앞으로 받을 약값을 좌우하기 때문이에요. 2012년부터 있던 이 제도가 왜 지금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됐는지, 약가 우대의 실제 무게를 애널리스트 시각으로 풀었습니다.

 

사실 예전부터 있던 제도라 낯설진 않은데, 올해처럼 기업들이 여기에 사활을 거는 건 처음 봅니다. 이유는 단순해요. 이 인증 하나가 앞으로 받게 될 약값을 좌우하거든요.

혁신형 제약기업은 2012년 도입된 제도예요. 정부가 'R&D에 진심인 제약사'를 인증해주고, 그 대가로 약가 우대·세제 혜택·국가 R&D 가점을 줍니다. 핵심 잣대는 매출 대비 R&D 비중이에요. 제네릭 팔아 번 돈을 연구에 얼마나 재투자하느냐가 관건이죠. 세제나 가점도 좋지만, 제약사 입장에서 진짜 큰 건 약가 우대입니다. 약값은 곧 매출이자 마진이라 실적에 직결되거든요. 특히 정부가 약값을 대대적으로 깎는 지금 같은 국면에선, 이 우대 한 칸이 생존을 가르는 수준이 됩니다.

14년 만의 대수술

올해 정부가 이 제도를 14년 만에 손봅니다. 큰 변화는 세 가지예요.

먼저 R&D 기준이 높아집니다. 최근 3년 평균 기준으로, 매출 1,000억 원 미만 기업은 R&D 비중 7%에서 9%로, 1,000억 원 이상은 5%에서 7%로 올라가요. 문턱을 확실히 높인 거죠. 다음으로 '준혁신형'이라는 중간 등급이 새로 생깁니다. 혁신형까지는 아니어도 일정 수준 R&D를 하는 기업을 따로 인정하는 단계예요(1,000억 이상 5%, 미만 7% 이상). 이제 제약사가 혁신형·준혁신형·일반 세 그룹으로 나뉩니다. 마지막으로 평가가 절대평가로 바뀌고(65점 이상이면 인증), 리베이트 기준도 조정됩니다. 5년 이전에 끝난 위반은 심사에서 빼주되, 확정된 위법은 1년 내 인증을 취소할 수 있게 했어요. 이 완화 덕분에 과거 리베이트로 인증을 반납했던 종근당·대웅제약에 재도전의 문이 열렸습니다.

혁신형·준혁신형·일반 제네릭 약가 차이

왜 지금인가, 약가 인하라는 발등의 불

이 모든 게 뜨거워진 진짜 배경은 약가 인하예요. 8월부터 제네릭 가격이 오리지널 대비 53.55%에서 단계적으로 45%까지 내려갑니다. 그런데 혁신형은 49%를 4년간, 신규 제네릭도 오리지널 대비 60%를 최대 4년간 인정받아요. 준혁신형은 그 중간인 47%, 일반은 45%. 같은 약을 팔아도 등급에 따라 약값이 달라지는 구조가 만들어진 겁니다.

약가제도의 변화

별것 아닌 4%포인트처럼 보이지만, 매출로 환산하면 얘기가 달라져요. 거칠게 따져봐도, 연 매출 500억 원짜리 제네릭이 일반(45%) 대신 혁신형(49%) 약가를 받으면 같은 물량을 팔고도 매년 40억 원 안팎의 매출이 더 생깁니다. 그게 4년이면 수백억 원이에요. 품목 하나가 이 정도니, 다품목을 거느린 회사라면 등급 하나에 회사 손익이 출렁이는 셈이죠. 제약사가 사활을 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.

압박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. 자체 생동시험을 안 한 위탁생동 품목은 패널티가 강화돼 약가가 36%까지, 동일 성분이 많은 다품목까지 겹치면 30%대 초반까지 떨어져요. 그러다 보니 수익 안 나는 품목을 미리 정리하는 움직임이 빨라져, 올 2분기 전문의약품 허가 취하 비중이 46.5%로 역대 최고를 찍었습니다. 제약사들이 "버틸 품목과 버릴 품목"을 가르기 시작한 거죠.

떼어냈던 R&D를 도로 합친다

여기서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납니다. 그동안 많은 제약사가 R&D 부문을 자회사로 떼어내 상장(IPO)시켜 연구 자금을 조달해왔어요. 그런데 이게 두 방향에서 막혔습니다. 하나는 혁신형 인증이에요. R&D 조직을 떼어내면 '본진' 모회사의 R&D 비율이 낮아져 기준을 못 맞춥니다. 다른 하나는 중복상장 규제로, 정부가 모·자회사 동시 상장을 원칙적으로 막으면서 자회사 상장으로 돈을 끌어오는 길이 좁아졌어요. "떼어내 봐야 상장도 안 되고 인증에도 불리하다"가 된 거죠. 그래서 떼어냈던 R&D 자회사를 도로 합치는 회사가 늘고 있습니다.

R&D 자회사 재합병 이유

대표가 일동제약이에요. 2023년 물적분할해 만든 유노비아(경구용 비만·당뇨 신약 ID110521156 등 개발)를 최근 흡수합병으로 다시 품었습니다. 휴온스그룹도 SC제형 기술을 가진 휴온스랩을 계열사 휴온스에 합치는 작업을 추진 중이고요(단, 중복상장 우회 논란으로 주총은 가이드라인 발표까지 연기). 제일약품은 매출이 주는 와중에도 R&D를 28% 늘려 인증에 도전하고, 종근당·대웅제약은 재인증을 준비합니다. 신규·연장 신청은 8월, 결과는 11월 이후예요.

의박이의 시선

여기까지가 '무슨 일이 벌어지는가'라면, 이제 제 생각을 덧붙여볼게요.

저는 이 흐름을 마냥 호재로만 읽지는 않습니다. 떼어냈던 R&D를 도로 합치는 게 곧 'R&D 역량 강화'를 뜻하진 않거든요. 흩어진 연구 자산을 한곳에 모으는 효과는 있지만, 상장을 통한 신규 자금 조달 기능까지 대신해주진 못합니다. 실제로 일동제약이 합친 유노비아는 합병 직전 완전자본잠식 상태였어요. 합병이 '연구를 더 잘하게 됐다'기보다 '제도에 맞춰 형태를 바꿨다'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는 뜻이죠.

제 눈에 이번 국면의 본질은 이겁니다. 약가라는 '돈의 규칙'이 바뀌니, 기업들이 그 규칙에 맞춰 몸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것. 합병도, R&D 증액도, 재인증 도전도 결국 "어떻게 하면 더 높은 약가 등급을 받느냐"라는 한 줄로 수렴해요. 그래서 저는 이걸 'R&D 경쟁'이라기보다 '제도 적응 경쟁'으로 봅니다. 진짜 R&D 경쟁력은, 이 적응이 끝난 뒤에 누가 실제로 신약 성과를 내느냐에서 갈릴 거고요.

그래서 앞으로 제가 체크하려는 건 두 가지예요. 하나는 8월 약가 개편과 11월 인증 발표에서 어떤 회사가 어느 등급을 받느냐. 다른 하나는 합쳐서 덩치만 키운 회사와, 합친 뒤에 실제로 파이프라인을 진전시키는 회사를 구분하는 일입니다. 거시(정책)는 매매 신호가 아니라, 그 위에서 개별 기업을 보는 렌즈니까요. 제도가 만든 이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진짜와 무늬만을 가려내는 것. 그게 산업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.

여담

사실 이 글을 쓰며 달력을 두 번 들여다봤습니다. 8월 약가 개편, 11월 인증 발표. 제약업계엔 이 두 날짜가 시험 일정표처럼 걸려 있는 셈이에요. 저도 그날들을 기다리는 마음이 좀 묘합니다. 애널리스트 시절엔 이런 이벤트를 '리포트 마감일'로 봤는데, 지금은 한 발 떨어져 '산업이 어떻게 반응하나'를 지켜보는 자리가 됐거든요. 결과가 나오면, 또 한 줄 정리해 들고 오겠습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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